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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톤 웨이를 읽고 (4)

크래프톤 웨이를 읽고 (4)

크래프톤의 10년간의 여정이 담겨 있는 크래프톤 웨이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내용을 정리하는 네 번째 포스팅이다.

1. 너무나 말이 되는 계획

장병규는 김창한을 ‘대단한 선동가’라고 생각했다. 김창한이 강하게 주장을 펴기 시작하면, 말이 안 되는 것이 말이 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장병규는 배틀로열 장르나 게임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홀린 듯이 김창한의 설명을 들었다. 장병규는 김창한에게 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일부러 아무 반응을 하지 않고서 한 시간짜리 열변에 집중했다. 역설적이게도, 김창한의 계획이 너무나 ‘말이 된다’는 생각이 장병규를 멈칫하게 했다. 테라를 북미에서 서비스해봤고 스팀에도 유통해 봤다. 이런 경험에 기대어 김창한의 구상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직관은 이렇게 속삭였다. ‘경험 있는 투자자나 사업가는 너무 말이 되는 딜에 대부분 응하지 않아.’ 장병규가 세운 스타트업 투자 업체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도 마찬가지의 투자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투자를 결정할 때, 너무 말이 되는 업체인 것 같다 싶으면 오히려 거부감이 들어 일부러 투자 계획 문서를 더 열심히 들여다보곤 했다. 이 의심 많은 남자는 세상일에 조금씩 문제가 있는 건 당연하고, 그게 차라리 건강하다고 여겼다. 외려 어떤 문제를 풀면 사업이 되겠다는 판단이 섰을 때 투자를 결정했다. (p. 335)

문제가 없는 회사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 말이 되는 업체라는 것은 어쩌면 본인 회사의 문제를 모르고 있거나, 숨기고 있을 수 있다. 문제를 명확하게 밝히고 솔직하게 강점과 약점을 분석할 줄 아는 것이 회사와 투자자의 건강한 관계가 아닐까.

2. 인재에 대하여

지식 산업의 인재는, 제조 산업의 3요소인 토지·노동·자본에서의 노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식 산업의 인재는 공장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일하지 않는다. 인재는 전통적 노동자와 다르게 스스로 생산 수단을 갖는다. 아트 디자이너의 역량이 태블릿에, 프로그래머의 역량이 컴퓨터에 있지 않다. 인재는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역량과 경험을 자기 안에 지닌다. 노동 시간이 아닌 성과로 평가받는다.

인재의 업무는 시행착오와 도전의 연속이다. 인재를 둘러싼 환경도, 인재가 사용하는 기술도 시간에 따라 빠르게 변한다. 꾸준한 성과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학습해야 한다. 큰 성과는 대부분 협업의 결과물이기에, 인재는 협업에 강한 사람이어야 한다. 경험한 만큼 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배우고 소통하려는 자세가 인재의 덕목이다.

지식 산업에서의 인재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조직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 권한·절차와 매뉴얼보다는 역할·책임과 자율이 그 근간이다.

지식 산업의 인재에게 자발적 동기와 의지는 특히나 중요하다. 어려운 도전일수록, 애매한 업무일수록 그렇다. 성공을 추구하되 실패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로부터 기꺼이 배울 각오를 갖춰야 한다.

블루홀은 한국 최초로 PC용 게임을 콘솔에 포팅하는 데 성공했다. 콘솔 포팅 프로젝트 초기, 경영진이 만난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이 프로젝트가 무산되리라 예상했다. 그간 도전 사례는 많았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말했다.

콘솔 포팅 프로젝트는 예상보다 시간과 노력이 훨씬 많이 소요됐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도전을 시작한 블루홀의 인재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제 블루홀뿐 아니라 게임업계 전체가 콘솔 포팅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런 일이 지식 산업에서는 너무나 흔하다.

실패가 뻔해 보이는 무모한 도전을 경영진이 일부러 선택하고 지시할 리 있었을까? 회사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이었다면, 블루홀의 인재들이 개발 과정을 견딜 수 있었을까? 콘솔 포팅 프로젝트에서 엿볼 수 있다시피, 인재들의 자발적 동기와 의지는 지식 산업의 근간이다.

지식 산업에서 실패는 흔하다. 시행착오는 더욱 빈번하다. 시행착오와 실패는 쉽게 관리되는 영역이 아니다. (p.장병규의 메시지 #7)

인재는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역량과 경험을 자기 안에 지니고 업무는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또한 변하는 세상에 맞추어, 풀고자하는 문제를 위해 다양한 것을 학습할 줄 알아야 하며, 협업을 잘 해야한다. 경험한 만큼 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배우고 소통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한 인재들의 자발적 동기와 의지는 지식 산업의 근간이다.

3. 확신에 찬 대답

김창한은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것을 해서 성공한다”고 답했다.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RPG 장르는 엔씨소프트가 19년째 해왔기 때문에 다른 업체가 경쟁하기 어렵습니다. 모바일 게임이 처음 나왔을 때는 아무도 해보지 않은 것이니 모두에게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배틀로열 장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안 해본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괜찮은 겁니다.” 장병규는 기술, 아트, 서비스 영역은 걱정하지 않았지만, 게임 디자인에선 김창한만으로 가능할지 의심을 떨치기 어려웠다. 장병규가 김창한에게 물었다. “게임 디자이너 없어도 되나요?” 김창한은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이 게임은 뛰고, 총쏘고, 죽는 게임이라 게임 디자이너 없어도 됩니다.”

장병규는 그게 못마땅해서 계속 딴지를 걸었다. “게임 디자인이 별것 없다는 건 상당히 나이브한 주장이네요.” 확신에 차서 답변하는 김창한과 대화를 나누다 결국 짜증이 치밀었다. 장병규는 김창한이 차라리 게임 디자인 문제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학습하겠다”고 말했다면 승인할 마음이었다. 별문제가 없다고만 하니, 오히려 의심이 들고 걱정이 가슴에 콱 박혔다. (p.345)

김창한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근거가 부족한 확신과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은 상대방을 오히려 의심이 들게 할 수 있다.

4. 브랜든 그린의 영입과 경영자의 프로젝트 승인

‘브랜든 그린을 영입하면 TSL 프로젝트를 승인하겠다’는 코멘트를 장병규 의장이 했다고 해서, 이 프로젝트가 브랜든을 꼭 뽑아서 배틀로열 게임을 출시하라는 지시를 이행하는 수준이 되는 건 아닙니다. 경영진이 프로젝트의 특별한 장점이 무엇인지, 해당 장르에서 개발팀의 게임 디자인 능력은 어떤지를 검토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 과정에서 저런 코멘트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죠. 게임 이름에 플레이언노운이 붙건 말건 블루홀이 이 게임을 출시 한다면 그건 김창한 PD나 김창한 PD를 포함한 제작 리더십이 팀을 이끌고 만들어낸 결과물이어야지 경영진 가운데 누가 내린 지시로 누구를 뽑아서 한 숙제는 아니어야 된다고 봅니다.

배틀로열을 가져온 것도, 브랜든을 접촉한 것도 김창한 PD 주도로 시작했습니다. 브랜든의 방문도 경영진의 푸시가 있기는 했지만, 김창한 PD 또한 합리적인 푸시라 판단했기에 추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든이 오면, 그 사람과 함께 일할 김창한 PD가 여러모로 그를 평가하겠죠. 영입이든 단기 컨설팅 계약이든 어떤 경우에도 김창한 PD가 아니다 판단하면, 그를 뽑지 않을 겁니다. 여느 채용과 마찬가지로, 경영진의 동의도 필요하고요. 그래서 필요한 정보를 챙겨주셔야 합니다.

김창한 PD가 그를 뽑고 싶어 하면 경영진은 그 경우에 맞게 그가 기획한 게임의 특별한 장점이 무엇인지 디자인 능력은 어떤지, 게임 개발에 쓰는 시간과 비용은 적당한지 검토해야 합니다. 이런저런 정보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은 그의 능력과 보상 수준을 가늠하기 위한 것입니다. 직원 보상의 적정성을 따지는 것도 경영진 일에 포함 되는 것이니까요.

장병규도 “동일한 생각”이라며 그의 말을 지지했다. 경영진은 김창한에게 서로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했다. 경영진은 프로젝트와 팀, 주요 개발자를 평가하고 보상 수준을 결정한다.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PD는 거기에 필요한 사항을 챙기고 경영진을 설득한다.

브랜든이 참여할 일정도 그 과정의 일부일 뿐이고, 전체를 주관하고 조율하는 사람은 결국 PD입니다. 지금까지 브랜든의 방한을 앞두고 인터뷰나 미팅 진행,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요청 등 경영진이 준 여러 코멘트의 대부분은 꼭 따르라는 지시가 아닌 조언이며, 결정은 PD 몫입니다. 앞으로도 필요하면 경영진의 지시인지 조언인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김창한은 “그렇다면 경영진이 판단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을 내 판단에 기초해 진행하겠다”며 논의를 정리했다.

저는 이 프로젝트 제안을 시작한 이후, 한순간도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결정 권한을 가진 경영진을 설득하고 조율하는 과정으로 알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 생각이 발전하기도 하고 경영진의 생각이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은 당연히 추진자인 PD의 몫임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설득과 조율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상대의 생각을 잘 알아야 합니다. 또 절차가 분명해야 하는데 현재는 그렇지 못하거나, 제 머리로는 알 수 없는 영역이 너무 많습니다. 절차를 분명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경영진의 숙제를 하는 것으로 보였을 수 있습니다.

블루홀이 지속적으로 제작을 하는 회사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TSL 프로젝트 논의로 장병규 의장님이 말씀하신 경영-제작 사이의 의사결정 프로세스 혹은 책임이 좀 더 상세하게 정리된다면 앞으로 많은 PD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브랜든도 블루홀의 영입 제안이 자신에게 기회라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아일랜드 사회보장기금을 받으며 게임 제작 작업을 붙들고 있었다. 무엇보다 김창한의 게임 프로젝트 자체에 마음을 뺏겼다. 스스로 발굴한 서바이벌 게임 장르의 유산을 직접 남기고 싶었다.

김창한은 브랜든이 노력만으론 절대 얻을 수 없는 핵심적인 2가지’를 갖추고 있다고 믿었다. 첫째는 배틀로열 게임의 핵심인 게임 디자인과 노하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브랜든은 개발자이기 이전에 광적인 게이머로서 배틀로열 게이머들과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소통해온 사람이었다. 만들고자 하는 게임에 대한 비전이 명확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김창한은 브랜든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자신이 머리로만 분석한 배틀로열 게임이 브랜든이 구상하는 게임과 디테일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브랜든의 구상이 더 탁 월하고 정교했다.

김창한은 기존 게임과의 차별화를 위해 구상해둔 팀플레이 방식과 장비, 게임 배경 설정 등을 모두 주변적인 것으로 여기게 됐다. 이를 모두 폐기하고, 배틀로열 형식을 제대로 갖춘 게임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배틀로열 형식을 갖춘 게임이 속속 시장에 등장하는 시기에 배틀로열 게임을 기존 것들보다 잘 만드는 것만으로도 결정적인 차별화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p.354)

김창환은 장병규의 생각을 알지 못하기에, 비록 화가 낫더라도 장병규는 걱정과 우려를 명확히 김창환에게 전달했으면, 혹은 김창환이 지시 이상으로 조금 더 능동적으로 생각했다면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 로스가 줄지 않았을까.

브랜든은 제작자 이전에 광적인 게이머며 배틀로열 게이머들과 소통해온 고객이다. 최초가 아니더라도, 열성적으로 제품을 사랑하며 경험이 많고 이해하는 고객이 디테일에서 다르고, 시장의 많은 대체제들과 경쟁제품들과 다른 차별적인 잘 만든 제품으로 시장에서 이길 수 있겠다.

5. 김창환의 성공

그동안 (겨우) 온라인 게임 3종을 만들었고 모두 ROI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쯤 되면 많이들 합리화를 할 것이리라. ‘배운 게 있었다’든지 ‘산업에 기여했다’든지. 나도 인간인지라 뭘 늘상 배우고는 있는데,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뭘 배워서 적용하면 이미 늦었더라. ‘지금 17년간 배웠을지 모를 무언가에 베팅하느니 무식해서 용감했던 28세로 돌아가 도전하는 편이 더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라는 게 요즘 생각.

김창한은 게임을 개발해온 지난 17년의 소회를 밝혔다. 세 번 창업하며 만들어낸 게임 3종이 하나같이 실패했다. 모두 개발도 오래 걸렸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고 실패에서 배운 것도 있지만, 성공하지 못해 그 빛이 바랬다.

첫번째 게임은 만들고 싶던 게임이었다. 두번째, 세번째 게임은 유행을 따랐다. 이때의 화두는 인내와 노력이었다. 결과적으로 첫 번째 게임이 가장 잘됐다. 그래서 시장을 분석하고 유행에 맞춘 게임보다는, 실패하더라도 하고 싶은 장르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성공은 결과이지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과거 제 프로젝트에서 결여된 것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봤어요. 개발자는 먼저 로망을 가지고, 그 다음 도전과 혁신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도전과 실패를 반복해야 한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p.360)

성공을 목표로 삼기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스스로가 진정성있는 문제를 풀고자 하는 것이 동기 부여가 가능하다. 과정을 목표로, 실패해도 기쁠 수 있는 문제를 찾는 것이 성공이 아닐까.

6.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과 그에 맞는 제품

완벽하게 만들기보다 빠르게 출시하는 게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기술만 빠르게 변하는 게 아니라 유행도 빠르게 변합니다. 사용자도 게 임을 즐기면서 빠르게 변합니다. 속도를 맞추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대형 MMORPG는 100여 명이 넘는 인력이 달라붙어야 할 때가 많 지만, 프로젝트 BRO는 30명 남짓의 소규모 인력으로도 개발할 수 있습니다.

개발에 시간이 걸리는 가장 큰 이유는 개발한 것을 엎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설계를 자세하게 하고, 대신 작은 규모로 빌드를 만들어 계속 테스트해나갑시다. 1년 안에 개발을 끝내고 빠르게 시장에 진입합시다. 금방 변하는 사용자들의 취향과 호흡을 따라갈 정도의 속도가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이어 김창한은 “4가지 문구를 가슴에 담고 일하자”고 주문했다. 김창한이 하나하나씩 문구를 읽어나갔다. 하나, 혁신은 제약에서 나온다. 둘, 세상을 뻔하게 보는 사람은 뻔한 일밖에는 못하고 뻔한 결과만 낼 것이다. 셋, 비평가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고, 도전의 결과는 알 수 없다. 넷, 도전에 있어서 실패는 양분이 되지만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은 후회가 된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성공하고 있는 요즘 어쩌면 전통적인 승자들과 대기업들은 금방 변하는 사용자들의 취향과 호흡을 따라갈 정도의 속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올바른 설계를 기반으로 제품의 속도를 고객의 변화하는 취향과 호흡의 속도에 맞추자는 김창한의 결심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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