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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을 졸업한 뒤 느낀점 (4)

박사과정을 졸업한 뒤 느낀점 (4)

1. 디펜스 이후

디펜스 이후 당일은 내가 이제 박사가 된 걸까? 이 호칭을 얻으려고 대학원을 온 것은 아니였지만, 바뀌는 것은 호칭 뿐인데 허무하고 허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번에도 공동 연구를 했던 교수님께서 답장을 한 동안 주시지 않아서 혹시나 불합격을 주신거라는 걱정도 했지만, 결과 입력 기한이 임박하고 무사히 늦게라도 답을 받아 학위 논문 심사는 통과를 했다. 나는 디펜스가 나의 불안과 걱정, 스트레스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디펜스가 끝났음에도 여전하다고 느꼈고, 나는 내가 그냥 영원히 고장나버렸다고 느꼈다. 기쁘거나 행복하다는 생각보다는 이제는 뭘 해야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너무 힘들었기에 연구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어서 포닥은 제외했었다. 그 외에 지도 교수님이 회사를 같이 해보자는 제안과, 같이 사업을 해보자는 의사 선생님의 제안이 있었고, 그게 아니면 취업을 해야 했는데, 진로를 명확히 정해놓지 않아서, 고민이 많았다.

아예 새롭게 투자회사나 비즈니스 컨설팅 회사가 가고싶기도 했으나, 그 곳에 가면 다시 기술 회사를 경험해보는 것은 힘든 불가역적인 반면, 기술 회사를 가면, 도메인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 기술 회사에 우선 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과 고민들도 했었다. 아직 남은 연구실 과제들을 하면서, 교수님께서 시키신 새로운 과제 제안서를 작성하고, 디펜스 준비로 추가로 연구했던 내용은 논문으로 작성하여 ICML 2024에 제출을 준비하고, 사업을 제안한 의사 선생님의 아이템을 간단히 실험해보면서 보냈다.

그렇게 2024년이 되었다. ICML 2024을 제출한 뒤, 작년에 borderline accet의 점수를 받았던 ICLR 2024는 별 다른 리뷰어들의 추가 응답없이 NeurIPS 2023에 이어 다시 한 번 reject이 되었다. 실망도 잠시, 이제 나는 관련 논문 실적이 졸업 논문뿐인 채 취업 시장에 던져졌다.

이전에 인턴을 했던 회사부터, 많이들 가는 대기업, 외국계 회사들까지 몇 군데 지원서를 내었지만, 취업을 준비할 힘과 여력이 정말 너무 부족했다. 지원을 하면서도, AI에 대한 논문 실적이 아직 없으니 과연 날 뽑아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전 연구 분야(통신)에 대한 회사에도 지원하고, 졸업 논문을 쓴 바꾼 연구 분야(AI)에 대한 직무로도 지원을 했다.

박사 과정 중 인턴을 했던 회사에서는 굉장히 좋은 연봉과 조건을 제안해줬으나, 그 외의 AI 직무로 지원했던 회사에서는 모두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국내 대기업에는, AI 직무로 넣은 지원서는, 통신 연구실 출신이어서였을까, AI 관련 실적이 부족해서 였을까, 한 동안 나는 AI에 대한 연구를 주로 했음에도, 내 지원서는 모두 통신 쪽으로 검토가 되었고 뽑지 않는다는 답을 받았다. 그 대신, 통신 사업을 하는 국내 회사에 합격했다.

결국, 의사 선생님과 교수님의 제안은 거절했고, 인턴을 했던 회사로 가서 중책을 맡을 지, 대기업으로 갈 지를 결정해야 했는데, 지금의 내 상태로는 정상적인 의사 결정이 힘들다고 생각했고, 인턴을 했던 회사에도 좋은 조건을 주신 것에 비해 내가 성과를 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감사하지만 죄송한 거절 의사를 말씀드렸다.

그 뒤 2024년 3월 입사 예정이었으나, 건강 검진 결과 문제가 생겨 다시 재검을 받고 4월 입사를 하게 되었다.

2. 나는 대학원에서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이루었나

정말 중요한 물음이다. 나는 과연 박사 학위를 받음으로써 내가 대학원에 온 목표를 이루어냈는가.

  1. 특정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보자.
  2. 빠르게 변화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은 학습 능력이다. 무엇이든 빠르게 배울 수 있는 수학능력을 기르자.
  3. 그와 더불어, 문제 해결력을 기르자. 좋은 문제를 정의하고, 풀 수 있는 능력을 얻자.

디펜스 전에도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이었고, 지금도 절반은 맞고 절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고, 창업을 통해, 그리고 수 많은 연구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하여, 기술 분야에 있어서는 문제 해결력도 함양하게 되었다고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한 분야의 전문가 또한 아주 국소적이지만 system-heterogeneous한 client들이 존재하는 federated learning 문제에 대해서 두 가지 방법론을 제안하여 Model-Agnostic Federated Learning이라는 주제의 학위 논문을 쓴 전문가라고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 분야의 전문가이고 수학능력이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분야를 바꾼 뒤에도 빠르게 실적을 만들어냈어야 하는데, 그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했다. 그렇기에 졸업은 하더라도,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추가로 내가 느꼈던 갈증이자, 내가 연구 분야를 바꾼 이유는 아래와 같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고 그 이유는, 내가 논문을 쓰기 위해 접근했던 방법은, 단순히 이런 연구 및 논문이 없으니 시도하여, 논문을 쓰기 위한 연구를 했던 느낌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오랫 동안 학계에만 있다보니, 실제로 내가 연구한게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것인지, 쓰이는 곳은 있는 것인지, 진짜로 문제인 것인지, 의심이 됐고 fundamental한 연구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떤 연구를 할 떄에, 그 연구(논문)이 세상에 없어서 풀고 그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보는 top-down 방식은 솔루션을 문제에 끼워맞추는 방식은 문제가 가치 있는 문제가 아닌 경우가 발생하고 무슨 문제인지를 정확히 파악이 어려워 동기부여도 떨어뜨릴 수 있다.

하지만, 문제 정의부터 시작하여, 실제로 주어진 문제를 기반으로, 독창적인 solution을 제안하는 bottom-up 방식은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문제에 적합한 솔루션을 고안하는 것이 더 가치있고 적절하며 지속 가능한 문제 해결방식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래서 바꾼 연구 분야로 작성한 내 학위 논문은 풀기 어려운 좋은 문제를 풀려고 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논문을 작성하고 졸업을 위해 실험 결과를 만들어야하다 보니, 결국에는 가정과 전제들이 많이 붙고, 원래 정의한 문제의 아주 일부분만을 푸는 솔루션이 되었다.

그리고 오히려 빠르게 논문을 쓰는 방법은 top-down방식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결국 논문이라는 결과물을 봤을 때에는 똑같아져버린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정답은 없지만,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함으로써 연구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고찰도 깊어질 수 있었다.

3. 아직도 남아 있는 것들

두 번이나 리젝이 된 내 논문은 어떻게 되었을까? 포기하지 않으면, 실패가 아니라는 말이 민망스러울만큼 정말 수 없이 수정을 해서 너덜 너덜해졌다고 느끼는 내 논문은 이제는, IEEE TMC에 제출을 하고 arXiv에 업로드를 해두었다. 2025년 1월 현재는 minor revision을 받고 다시 review 중이다.

그리고 ICML 2024에 제출한 논문도 리젝이 되었고 마찬가지로 업로드를 해두었고 IEEE TMC에 review 중에 있다. 2022년부터 시작되었던 내 불운이 이 논문들이 출판되면 조금은 극복될 수 있을 것 같다.

4. 나는 이제 무얼 위해 살아야 할까

어렸을 때, 그리고 20대초에는 30살 즈음이 되면, 졸업도 하고 명확한 인생의 가치관 아래에서, 명확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을 줄 알았다. 30대가 된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20대때 발생시킬 수 있었던 강력한 열정과 에너지가 줄어들어, 그 젊음의 에너지를 대학원에 보내버린 것이 아쉽기도 하고…

졸업 뒤 1년이 지나면서, 고장났던 마음은 조금 고쳐졌지만,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다만, 누구에게나 언제든 기회가 찾아올 수 있으니, 조급해 하지말고 여유를 찾고, 새로운 것들과 또 목표를 만들어 나아가고 싶다. 이렇게 사는 것도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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