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박사과정을 졸업한 뒤 느낀점 (3)

박사과정을 졸업한 뒤 느낀점 (3)

1. 연구 실패와 함께 지나가버린 2022년

문제와 주제가 정해졌으니, 내가 대학원에 온 이유와 목표를 이루기 위해, 큰 포부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우선, 여러 가지 requirement에 맞는 다양한 모델을 효율적으로 학습하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고자 했다.

제일 처음으로, 사용자별로 동일한 모델을 가지고 있지만, 컴퓨팅/메모리 requirement에 따라 모델의 복잡도를 줄일 수 있는 모델을 분산된 데이터로 학습하는 방법에 대해 솔루션을 설계하고 실험을 했으나, 실험 결과가 계속 좋게 나오지 못했다 해당 실험 결과를 통해 프로포절을 하고, 공유된 데이터 중 어떤 것이 좋은 데이터인지 판단하는 방법과 그에 맞는 보상을 제공하는 방법에 대해 추가 연구를 진행해서 디펜스를 하고 싶었는데, 시간은 벌써 2022년 상반기가 거의 지나버렸다.

박사는 보통 4년의 정규과정을 가지고 있었고, 졸업을 위해서는 프로포절과 디펜스를 위한 최소한 2학기가 필요했는데, 4년 졸업은 안 되는 상황이 되었고, 데이터를 제공하고 보상을 제공하는 방법과 관련된 연구를 하면 시간이 훨씬 지체될 거란 생각을 가지고, 아쉽지만 다양한 모델을 효율적으로 학습하는 방법에 대해서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진행한 실험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데, 석사과정과 박사과정 저년차 때는 대부분 설계한 실험으로 예상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기에, 처음 겪는 실험의 실패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재미었던 것 같다. 어려웠던 점은, 우리 연구실에서 일반적으로 연구하던 주제와 매우 달랐기에, 어느 정도의 결과를 만들어야 할 지, 어떤 결과를 보여야 할 지에 대해 알기가 어려웠다.

다시 처음부터, 조금 더 기본으로 돌아가서, 다른 접근법으로 해당 문제를 풀기로 했고, 생각한 만큼은 아니였지만,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후에 지도교수님께서 연결해주신 교수님과 디스커션을 하게 되었다. 매 주말마다 협업하면서 빠르게 논문으로 정리하고 싶었으나, 매번 교수님께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라는 지적을 받아서 논문을 작성할 수는 없었고, 어떻게 더 흥미롭게 만들지, contribution을 만들어낼 지 고민을 했고, 조금씩 개선해 나가면서 매주 업데이트를 해나갔다.

협업하는 교수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매 주 업데이트를 위해서 열심히 연구를 했으나, 색다른 결과는 계속 잘 안나왔고, 자신감과 능률이 굉장히 떨어졌었다. 그러다가 2022년 10월 경에 정말 심하게 아파서 거의 한 달간 몸살을 겪으면서 제대로 된 업데이트를 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는 내가 부족한 탓에 교수님과 효과적인 디스커션이 안된다는 생각에 스스로 연구를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어서 논문 제출을 하고 프로포절을 해야 하는데라는 마음으로 2022년의 하반기도 지나가버렸다.

2. 프로포절

어쩔 수 없이 난 박사과정 5년차로 2023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흥미롭지 못하다는 피드백으로 낼 수 없었던 내 연구와 접근법은 좀 다르지만 사실상 동일한 논문이 ICLR 2023에 제출되고 2023년 1월 accept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논문을 냈다고 accept이 되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많이 아쉬웠고 많이 속상했다.

또, 지금까지 한 연구는 이제는, novelty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더 많은 내용과 contribution을 가져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 조급해졌다. 혹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연구를 또 다른 누군가가 하고 공개 혹은 제출하지 않았을까라는 마음에.

속상하지만, 졸업을 더 늦게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기존 연구에 새로운 연구를 덧붙여서 거의 한 달만에 더 일반화된 연구를 진행하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프로포절을 준비했다. 정말 힘들었었다. 나는 이 때 정말 심리적으로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프로포절은 사실 박사 후보생이 이런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작성하겠다는 내용의 발표이지만, 사실상 학과에서는 디펜스 이전에 예비 심사의 성격이 컸고, 디펜스보다도 비중이 크게 여겨졌었으며, 우리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분야가 아닌 박사 학위 논문이다 보니, 심사위원 교수님들이 선배들의 심사위원 교수님과는 달랐기에, 이 정도의 연구 결과를 가지고 발표를 해도 괜찮은 지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컸다. 또,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코딩을 해야했는데, 그럴 때마다 코딩하고 디버깅을 하는 것이, (내가 연구와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대학원에 온 것도 있지만) 박사 5년차가 되어서야 내가 이 일과 맞지 않는건가를 처음으로 생각할 만큼 너무 괴롭고 힘들고 싫었다.

프로포절 당일 아침에 나온 실험 결과를 넣고 발표 준비도 제대로 못한 채 프로포절을 할 만큼 매일 매일이 급박했다. 그러다 보니 완성도도 떨어지고 부족한 점이 정말 많았고, 진심으로 도망치고 싶었고, 자퇴할까에 대한 생각도 했다.

결국에는 그냥 프로포절이 잘 안되면 자퇴하지 뭐라는 생각으로 최대한 보완하여 그 연구에 대해서 5명의 교수님들 앞에서 2023년 2월 22일 프로포절을 했다.

그리고, 정말 프로포절이 합격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발표를 했으나 운이 좋게 통과를 했다. 공동 연구를 했던 교수님은 (아마 바쁘셔서) 프로포절 결과에 대한 답장을 오랜 기간 안 해주셨는데, 나는 이게 불합격인 줄 알고 꽤 노심초사했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3. 2023년 상반기

다행히 프로포절은 잘 마무리가 되었고, 이제 디펜스를 준비하기 위해 프로포절에 발표했던 내용을 추가 연구를 했는데, 지속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 상태로 2023년 상반기 디펜스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좀 더 준비하여 2023년 하반기 디펜스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디펜스 이전에 내 졸업논문에 대한 좋은 논문 결과(좋은 학회 혹은 저널에 발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5월에 NeurIPS 2023에 내 연구에 대한 논문을 제출했다. 그리고 제출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던 새벽 4시에 고라니가 갑자기 나타나서 고라니를 치고 차가 부서졌다.

그리고, 그 뒤로 얼마 뒤 친구의 강아지에게 물려서 얼굴에 상처가 나서 응급실을 갔고, 6월에는 좋아하던 축구를 하다가 다리 뼈가 골절되어 다리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다녔으며, 7월에는 5월 제출했던 논문에 대해, 1개의 strong reject과 2개의 borderline reject의 결과를 얻었고, 차 사고를 내었고, 8월에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며, 나는 2022년 3월에 이어 두 번째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을 믿어도 계속 더 어두워졌고, 분명 내가 이런 시험에 들게 된 것은 내가 대학원에 온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타난 시험이라는 생각만으로는 버티기 힘들었다.

반복된 실패와 불운, 그 당시 무너지는 기분과 일상을 버티기 위해 2023년이 끝날 때까지 차례 차례 글을 포스트 잇에 써서 붙여놓고 읽고 다짐했었는데, 몇 가지 찍어두었던, 연구실 내 자리와 방에 붙여놓았던 포스트잇이다.

drawing drawing drawing drawing drawing drawing

4. 2023년 하반기와 디펜스

나는 7월에 결과가 나온 논문에 대해서 rebuttal을 실낱을 붙잡는 심정으로 제출했지만, 지금 돌이켜봐도, 사실상 reject의 결과였고, 예상했듯이 9월 최종 reject의 결과를 얻게 됐다. 실망했지만, 부족했던 점을 인정하고, 보완하여 9월 말 다시 ICLR 2024에 다시 제출하였다.

그 사이에, 9월에는 내가 봐주던 후배의 논문도 학회에서 reject이 되었고, 10월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정말 눈물이 없고 이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정말 많이 울고 우울했다. 차가 부서지고 강아지에게 물렸을 때에도, 다리가 부러졌을 때에도, 나는 모든 것이 잘 되려고, 액땜이 여러 가지 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이 내 저점이고 바닥인 줄 알았는데, 계속 떨어지고, 망가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연구를 할 때 논문을 제출하고 리젝을 받는 것은 흔히 자주 일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얼른 졸업해야되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크고, 지속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어서 그랬는지, 계속 나는 자신감이 떨어지고, 내가 손 대는 모든 것들이 나쁘게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렇게 별 볼일 없고 모아둔 돈도 없는데, 주위 회사를 다니면서 돈을 버는 친구들이 너무 대단하고 존경스럽게 느껴졌고, 나는 능력도 안 되는데 스스로에 대한 객관화가 안되어 괜한 객기로 잘못된 선택을 하여 대학원을 온 건가라는 생각을 수 없이 많이 했다.

또 괜히 개인적인 목표를 이뤄보겠다고, 박사 4년차때 연구 분야를 졸업 직전에 바꿔서 실적도 안나오고 졸업도 못하고 있는 것인지, 관련된 분야에 논문이 하나도 나오지 않으면 도대체 나는 어떤 분야의 박사인가, 어떤 분야의 전문가이긴 한 걸까라는 회의감도 들었고, 괜한 혼종같이 느껴지기도 했고, 과연 이런 내가 회사에 취직은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도 많았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사소한 것들을 포함하여 그 동안 잘 못했던 것들도 많이 떠올랐고, 내가 지금 그 벌을 받고 있는건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정말 나 때문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매일 매일 밤에 누워서 천장이 보이면 또 어떤 일들이 터질까 불안한 생각이 많이 들고, 가슴이 뛰었고, 한참이 지나도 잠이 오지 않아 밤을 새우고, 아침 일찍 연구실에 나오기도 하고, 멜라토닌을 먹고 억지로 잠을 자기도 했다.

한번은 연구실에 있는 동안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공황장애가 걸린 것인지까지도 생각했다.

2023년 느꼈던 감정들과 생각들은 너무나도 우울했고, 이 순간들을 버티기 위해 도움됐던 글 들 중 일부는 내 학위 논문의 마지막 장에 기록을 해두기도 했다.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전구를 만들지 못하는 방법 1000가지를 찾은 것이다. -Thomas Edison

때론 화가 날 정도로 내 처지가 불쌍하기도 했지만 무언가를 탓하며 주저 앉아 있을 수 만은 없었다. 불편하고 험난한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기꺼이 가는 것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일 테니까. 처음부터 겁 먹지 말자. 막상 가보면 아무것도 아닌 게 세상엔 참으로 많다. -김연아

우리의 일은 오늘과 내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의 역량 또한 마음과는 다르게 더디 발전한다. 그럼에도 매일 더 나은 결과를 구체적으로 그리며, 느리지만 잘 가고 있다는 믿음이 나를 이끌어 준다. 오늘 할 일을 머릿 속에 그려보는 것, 그릴 수 있는 변수들과 대처들, 동료들과 맞춰갈 일들, 아름다운 결과물. 그리고 하루 하루가 거의 비슷한 이 과정들을 더 섬세하고 완전히 해낼 수 있게. 매일을 새 것처럼 맞이할 수 있게. -허민수 셰프

그렇게 사실상 정신이 나간 채로 연구실 과제들을 처리하면서, 디펜스 준비를 했다. ICLR 2024에 제출했던 결과는 11월에 처음 나왔는데, marginally above the acceptatnce 2개와 marginally below the acceptance 1개를 받았다. 해당 점수는 정말 턱걸이로 accept 될 수 있는 마지노선의 점수였고, rebuttal 이후 점수가 하나라도 높아지면 accept 가능성이 있는 결과였다. 드디어 탑티어 학회에 바꾼 연구 분야로 논문이 생기는구나, 이걸로 취직을 할 수 있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rebuttal 기간동안 리뷰어들은 답장이 없었고, 한 명은 점수를 유지하고 마무리가 되었다. 그 이후에 area chair는 제출 당시 논문에 포함돼 있던 결과가 없어서 낮은 점수를 준다는 의견의 리뷰를 주었다.

나도 이전의 연구 분야에 대해서 꽤 많은 리뷰를 했었는데 (IEEE TVT, TCOM, TWC 등에 대해 100편 정도는 한 것 같다), 사실 논문을 리뷰할 때, 읽은 뒤 내 맘 속의 점수(accept, major, reject 등)는 정해져있고, 그 이후에 이유를 만들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이 분야로 논문을 처음 쓰다보니, 기준점이 없어서 힘들었었는데,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area chair나 reviewer들의 남긴 리뷰와 관련 없이 부족했던게 아니었을까 싶다.

단 하나의 제대로 accept된 논문 없이 2023년 12월 초 Model-Agnostic Federated Learning이라는 주제로 디펜스를 했다. 자신감은 떨어져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부족한 내용이 많았지만, 지난 프로포절만큼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더 이상 부정적인 일들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던 그 때의 상황 때문에 담담해진 것도 같았고, 5월 이후로 도와준 후배의 역할도 컸고, 그 해 맡았던 두 개의 연구실 과제도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고, 상반기에 했던 공동연구하는 교수님과는 코웤을 그만하고, 추가 연구를 진행하여 부정적인 말들을 듣지 않아서 였던 것도 같았다. 다만 그 교수님이 커미티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것이 많이 걱정이 되었던 것은 같다.

그렇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디펜스를 마무리 했는데, 우리 학과는 약 일주일 간, 익명으로 5명의 커미티에게 결과를 받아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다음글에 이어서…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